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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IDAS의 탄생
ADIDA의 역사는 1924년으로 거슬러 갑니다. 1차 대전이 끝난 뒤 형 루돌프 다슬러(RudolfDassler)는 신발 사업에 관심있던 동생 아돌프 다슬러(Adolf Dassler)와 함께 1924년 "다슬러 형제 신발 공장"을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합니다. 1936년 사업 발전의 기회가 오는 데 바로 베를린 올림픽 이었습니다. 아돌프 다슬러는 자신이 만든 육상 스파이크를 들고 육상의 유력한 메달 후보인 제시 오웬스를 찾아갑니다. 그를 설득하여 자신들의 운동화를 신고 참가한 오웬스는 100m를 비롯해 무려 4개의 금메달을 따게 됩니다. 이때부터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다슬러 형제의 운동화를 찾기 시작하였고, 2차 대전이 발발하던 1939년까지 다슬러 형제는 매년 20만 켤레 이상의 운동화를 판매하였습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다슬러 형제는 2차 세계대전 이후과 심한 갈등을 겪게되고 1947년 둘은 각자의 길을 가게됩니다. 1948년 형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푸마 슈퍼브릭 루돌프 다슬러"라는 신발회사를 만드는데 이것은 나중에 퓨마가 됩니다. 동생 아돌프 다슬러는 1949년 역시 자신의 애칭인 아디(Adi)와 성 다슬러의 첫 글자를 따서 "아디다스(Adidas)"로 회사명을 바꾸게 됩니다. 이것이 아디다스 브랜드의 탄생입니다. 세계인들에게 너무 친숙한 심벌인 삼선(three stripe)은 1967년에 처음 등장 하였으며, 1970년대부터 아디다스의 운동화와 운동복에 새겨졌는데 다른 많은 스포츠 상품들이 무단으로 사용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나이키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성장하기 전 1970, 80년대까지 세계 스포츠계에서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아디다스의 로고는 1972년 탄생 하였습니다. 세개의 나뭇잎으로 구성되고, 밑부분에 줄무늬가 들어간 이 로고는 스포츠 중계에서 전세계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었습니다.
ADIDAS의 확장
1949년 독일 축구 대표팀의 공식 납품업체가 된 아디다스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또 한번 세계의 주목을 받게됩니다. 서독 대표팀은 당시 세계 최강 헝가리에게 조별 리그에서 3대8로 대패 하였습니다. 터키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힘겹게 8강에 오른 후 유고슬라비아와 오스트리아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였습니다. 결승 상대 헝가리는 워낙 막강했기에 서독의 우승을 기대하는 이는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당일 경기가 벌어진 베른에 폭우가 쏟아졌는데 경기 초반에 헝가리는 두골을 넣고 주도권을 잡았으나 폭우로 그라운드가 진흙탕이 되자 축구화 바닥의 스터드(징)가 교체가능한 운동화를 신은 서독 팀은 전반 종료 후 스터드를 교체하였고 이때부터 힘을 얻은 서독은 2대2 동점까지 따라 붙고 후반 39분 헬무트 란이 결승골을 넣으며 3대2로 헝가리를 무너뜨렸습니다. 서독의 승리이자 아디다스의 승리 였습니다. 이 월드컵을 통해 아디다스는 축구 전문 브랜드로 급성장 하였으며, 대표팀이 신었던 징박힌 축구화는 주문이 쇄도해 한해 45만 켤레가 넘게 생산되었습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스포츠 의류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으며,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디다스의 텔스타가 공인구로 사용되면서 아디다스의 축구공은 모든 FIFA월드컵의 공인구로 채택 되었습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아디다스 축구화를 신지 않으면 일류 선수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스포츠 용품 분야는 아디다스의 독주체제 였습니다. 1978년 78세의 나이로 아돌르 다슬러가 사망하며 다슬러 가문의 경영이 시작 되었습니다. 아내에 이어 아들인 호르스트 다슬러는 무리한 사업 확장과 FIFA회장 및 IOC위원 임명 등 스포츠 정치에만 몰두하면서 아디다스는 정체성을 잃고 서서히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1987년 호르스트 다슬러가 사망하면서 가문의 경영은 막을 내리고 전문 경영인 체제가 시작됩니다. 1990년 베르나드 타피에가 새로운 CEO자리에 올랐으며, 그는 창업자 아돌프 다슬러와 더불어 현재의 아디다스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1990년대 이후 아디다스는 비약적인 재도약을 시작합니다. 미국의 힙합그룹 런 디엠시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면서 당시 런 디엠시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중절모와 아디다스 운동화는 전세계 힙합퍼를 상징하는 아이템이 되었으며, 아디다스가 제작한 런 디엠시 라인의 시그니처 제품들은 전 세계로 팔려나가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에게 벌어준 만큼의 수익을 아디다스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아디다스의 트레이드 마크인 삼선 트레이닝 복을 비롯한 아디다스 의류의 시작은 베르나드 타피에의 노력의 결과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1997년 동계 스포츠 용품 회사인 살로몬을 인수했으며, 2006년 리복(Reebok)응 인수하고 2011년에는 아웃도어 전문 브랜드 파이브텐과도 합병하였습니다. 창업 후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의 스포츠 용품 회사로서의 지위를 놓지 않고 있는 아디다스입니다.
ADIDAS의 기술 개발
ADIDAS가 2013년 선보인 부스트(BOOST)는 뛰어난 쿠셔닝과 에너지 리턴을 동시에 충족 시켜주는 새로운 기술입니다. 아디다스는 종합 화학회사 BASF와 협력 개발을 통해 특수 제작된 수천개의 에너지 캡슐을 사용해 기존 제품보다 향상된 에너지 리턴을 느낄 수 있게 하였습니다. 부스트의 핵심은 쿠셔닝을 느끼게 하는 소재에 있습니다. 열가소성 폴리우레탄 엘라스토머를 수천개의 작은 캡슐로 변환시켜 편한 쿠셔닝과 반발력을 동시에 제공해 줄 수 있다고 합니다. 같은 해 아디다스는 체계적인 달리기 코칭을 원하는 고객을 위해 "마이코치 스마트 런(MiCoach Smart Run)"을 출시 하였습니다. 이는 맞춤형 트레이닝을 제공하는 스마트 시계 제품입니다. 손목의 광학 센서를 통해 자신의 심박수를 확인 할 수 있으며, GPS로 달리는 속도와 거리 및 경로 측정이 가능하며, 아디다스의 마이코치 어플리케이션 계정과 연동하면 100여 가지의 트레이닝 플랜을 바탕으로 맞춤형 개인 훈련 플랜을 짤 수 있고 와이파이로 전송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이코치 핏 스마트"는 마이코치 스마트 런의 최신버젼으로 손목 밴드 형태로 디자인 되었습니다. 마이코치 핏 스마트는 한눈에 간단히 체크할 수 있도록 간단한 정보만 나온다는 것이 마이코치 스마트 런과의 차이점입니다.